정보화마을 파주 통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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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촌 마을이장 인사말

    우리 지역은 민통선 북단에 위치한 마을로 판문점, 제3땅굴 도라전망대등 안보 관광지를 비롯하여 옛 유적들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으며, 통일의 꿈을 안고 경의선 연결과 도로가 열리고 있는곳 입니다. 또한 기름진 옥토와 깨끗한 천혜의 환경으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인 장단인삼, 장단콩, 장단쌀 등은 장단3백으로 임금님께 진상 되었던 품목이며 그 외에 안약재중성약으로 유명한 천마나 고추, 참깨, 도토리묵가루 등 양질의 농산물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천혜의 고장으로 남겨져 있는 통일촌마을은 50년동안 마을주변에는 공장 및 오염원이 없는 민간통제구역으로 묶여있었던 관계로 절대무공해의농산물이 넘쳐나는 마을입니다. 한번와보시면 절대 무공해 청정자연을 느껴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인삼은 생산량 전체가 홍삼으로 가공되어 수출되고, 장단콩은 전통장류로 가동되어 성황리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장단콩은 우리지역에서 명품으로 매년 추수가 끝나는 가을에 장단콩 축제를 열고 있는데, 어느덧 14회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좋은 조건, 맑은공기, 깨끗한 환경에서 재배한 우리 농산물이야말로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직도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순수한 농심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 통일촌 주민들은 더욱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양질의 농산물을 생산하여 소비자와의 직거래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겉으로는 약간 촌스러울 수 있으나 내용물 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고급 농산물임을 믿고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우리 통일촌 홈페이지를 자주 찾아 주셨으면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우리 농산물을 많이 애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댁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완배 위원장

    ● 통일촌 마을소개

    • - 위 치 : 파주시 조내면 백연리
    • - 행정구역 :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정책입주촌」(군사분계선 남방 4.5㎞지점)

    통일촌 마을의 행정지명은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이고 보통 '통일촌'이라 칭한다.
    1970년대 초 황무지로 방치된 채 놀고 있던 땅을 개간하여 식량을 생산하고, 입주민들은 17세 이상 60세 이하의 남자들로 향토 예비군을 편성하여 국방의 일면을 담당하게 하는 등 이스라엘의 전략촌인 '키부츠'를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정착마을이다

    통일촌

    마을이 형성된 초기에는 이곳이 고향인 세대 40가구와 1사단 예비역 장교 및 부사관 출신 40가구 학교, 양수장, 교회 목사님과 같은 관련세대 4세대 등 총 84가구가 입주하였으나 30여년이 흐르는 동안 인구가 증가하여 현재는 102세대에 이르게 되었다.

    이곳은 민통선(민간인 출입 통제선,G.O.P) 북방지역으로 일반 민간인들의 출입이 제한을 받는 곳으로 휴전 이후 자연 그대로의 환경이 잘 보전되어, 도시민들에게 양질의 청청 농산물을 생산, 공급하고 있다. 또한 유엔에서 자연환경보전권으로 지정이 예정될 만큼 천혜의 환경이 자연 그대로 잘 보전되어 있고, 이후 우리 후세에 물려줄 소중한 지역이다.

    예로부터 기름진 옥토와 깨끗한 물과 공기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 콩, 인삼은 장단3백이라 하여 임금님께 진상되던 품목이며 파주시에서 특산품으로 지정, 매년 11월에 '장단콩 축제'를 개최하여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마을이다.

    주변에는 도라전망대, 제3땅굴, 판문점 등 안보관광지와 덕진산성, 덕진당, 서곡리 고분벽화, 동파리마애불, 허준선생묘 등 유적지가 산재하고 있으며 임진강에서 잡히는 황복, 민물장어, 숭어 등도 유명하다.

    • 통일촌비

      <북쪽을 향하여 서있는 통일촌비>

    • 사랑의집짓기

      <해비타트 사랑의 집짓기 건립세대>

    ● 통일촌 역사 및 연혁

    • - 1972.04 : 제1사단 하사관 14명 영농
    • - 1972.05 : 대통령께서 정착촌 개발지시
    • - 1972.11 : 통일촌 건립 지본계획 확정
    • - 1973.08 : 80세대 준공 및 입주(1사단 제대방병 40, 실향민 40)
    • - 1979.05 : 군내출장소 설치

    통일촌은 1972년 5월 대통령의 적십자 전방사무소 순찰시 "재건촌의 미비점을 보완한 전략적 시범농촌을 건설하라"는 특별지시에 따라 1973년 8월 건립되었다 당시 재건촌은 종합개발계획 없이 영세민을 입주정착시킴으로써 낙후성을 초래하였고, 외래인과 연고인들의 혼합입주로 단결력 및 향토애의 결핌, 토지 및 주택에 대한 사유의 불인정으로 인한 주택관리 소홀 등 임시거주지라는 사고방식이 팽배하여 많은 문제점을 보여주었다.

    통일촌 건설 대상지로 선정된 곳은 파주군 군내면 백연리와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유곡리였다. 당시 입주자 선정은 군복무를 필한 사람, 5인 가족 이내로 노동력 2인 이상인 기혼남자, 새마을 정신이 투철하고 국가관이 확고한 사람, 신체 건강하고 영농능력이 있는 사람, 사상이 건전하고 전과사실이 없는 사람, 주벽 및 도벽이 없고 채무가 없는 사람 중에 선전하였다. 그 결과 백연리에는 제대를 앞둔 하사관 40세대와 예비군 자격을 가진 원주민 40세대 총 80세대가 입주하게 되었다.
    백연리 80세대의 입주자들에게는 논과 밭을 합하여 200ha의 경지가 제공되었는데, 이곳 역시 대성동과 마찬가지로 외부인의 입주가 허용되지 않은 민통선 북방지역의 넓은 토지를 경작함으로 인해 호당 평균 경지면적이 2.7ha에 이르고 있다. 또한 경지면적에 비해 노동력이 부족한 까닭에 영농의 보다 효율적인 방식이 요구됨으로써 농기계 보유정도도 여타지역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 대성동 마을이장 인사말

    이렇게 우리마을이 정보화마을로 선정되어 외부로 많이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을 마을주민을 대표하여 우선 감사 드립니다. 저희 마을은 비무장지대 내에 있는 마을로써 1963년 휴전 협정에 의해 남북에 하나씩 민간이 거주할 수있는 마을을 두기로 합의하여 생긴 마을로, 원래 이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분단 이후에도 그대로 거주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남북 대치상황의 최전방 마을 입니다.

    마을의 앞쪽에는 같은 동포이지만 하나의 다른 체제인 기정동 마을이 있고 유일한 대화 창구인 판문점을 진척에 두고 있으며 마을 주변은 항상 분단의 아픔을 안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은 생업인 농업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있는 우리마을은 외부의 손길이 전혀 닫지 않은 자연환경을 갖고 있으며 맑은 물과 기름진 토양에서 신선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예로부터 장단 3백의 품목인 개성인삼, 콩,쌀등으로 유명합니다. 우리마을 주민 모두는 이 홈페이지를 통해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재배된 농산물을 보다 많은 외부의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우리마을의 홈페이지를 자주 찾아주시고 항상 댁의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김동구 조산리장

    ● 대성동 마을소개

    대성동은 국내 유일의 최북단 비무장지대이자 영화로 더욱 유명해진 공동경비구역 JSA 내에 위치한 특수한 마을이다. 이곳은 자유의 다리로부터 북으로 약 12.5km, 개성으로부터 남으로 약 11.5km 떨어져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이다. 특히, 마을 북동쪽으로 약 1km 지점에 판문점이 위치하고 있고, 마을로부터 40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군사분계선이 지나고 있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다.

    대성동

    대성동 건너편에는 북한의 선전마을인 기정동이 있는데, 이 두 마을사이의 거리는 불과 800미터 정도이다. 기정동의 인공기와 대성동의 태극기가 양쪽에서 펄럭이고 있는 모습을 함께 볼 수 있어, 다른 어느 곳보다 분단의 아픔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대성동에서는 북한 기정동 주민들의 생활 모습과, 개성 송악산 전경을 선명히 볼 수 있다.

    대성동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이 마을이 대한민국정부가 아닌 유엔군 사령부의 통제하에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휴전협정] 제1조 10항 "비무장지대 내의 군사분계선 이남의 부분에 있어서의 민사 행정 및 구제사업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 책임진다."에 근거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곳이 대한민국 법률과 통치가 전혀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지대는 아니다. 대성동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며, 이들이 범법 행위를 하면 일단 대성동에서 추방되는 형식을 거친 후, 대한민국 법률에 의하여 규제를 받는다. 이처럼 대성동은 유엔군사령부의 통제하에 있으면서, 실질적으로는 대한민국정부의 통제권이 미치는 특이한 지역이다.

    • 마을 입구의 자유의마을 현판

      <마을 입구의 자유의마을 현판>

    • 대성동 건너편 북한 기정동 마을

      <대성동 건너편 북한 기정동 마을>

    이곳 대성동 주민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제한을 받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대성동이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주어진 특혜이고 제한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대성동은 철저히 분단체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휴전 이후 50여년 간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히 제한되어 온 대성동 인근의 자연 환경은 50여 년간 외부의 손길이 닿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1,000여종의 식물과 99종의 조류와 동물들이 서식하는 자연 생태계의 보고이다.

    현재는 남북분단 상황이므로 철저하게 통제된 지역이지만, 앞으로 남북 화해와 통일 분위기가 좀더 무르익게 되면 세계적 수준의 '생태관광 휴양지' 및 '남북평화 특구 시범지구'로 조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이산가족 상봉장 및 유통, 관광, 산업, 문화 등 남북교류의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 비무장지대 내 어룡저수지

      <비무장지대 내 어룡저수지>

    • 유엔사경비대대 초소 입구

      <유엔사경비대대 초소 입구>

    ● 대성동 역사 및 연혁

    • - 1950.06 : 6.25 사변으로 마을 파괴
    • - 1953.08 : 휴전협정에 의해 북한의 기정동과 함께 비무장지대 내에 민간인이 거주할 수 있는 마을로 인정
    • - 1962.11 : 장단군에서 파주군 군내면 조산리로 행정구역 개편
    • - 1968.05 : 대성동 국민학교 건축
    • - 1979.07 : 대성동 제1차 종합개발사업 착수(주택, 저수지 신축 및 농지 정리)
    • - 1981.03 : 대성동 제2차 종합개발사업 착수(신설저수지 신축 및 농지 정리)
    • - 1983.10 : 마을 복지회관 건립
    • - 1994.06 : 자유의 마을 대성동 현판 설치

    해방 직후 대성동은 행정구역상 경기도 장단군 군내면 조산리 대성동이었으며, 50세대가 거주하는 마을이었다.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농업을 생업으로 하여 살고 있었으며, 교통이 불편하여 외부와의 접촉이 별로 없는 가난한 벽촌이었다. 당시 마을 부근의 옥답과 인삼밭은 개성 유지들의 소유였고, 주민들은 그들의 소농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6.25 전쟁 당시 남으로 피난을 갔던 주민 일부가 1953년 봄 귀향하여, 대성동에는 30세대 160명이 거주하게 되었다. 당시 전선이 이 일대에서 교착되어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고 있었으나, 대성동은 휴전회담이 열리고 있던 판문점 부근이어서, 교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마을에 주민들의 거주가 가능하였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이 휴전되고, 휴전협정 부칙에 의하여 휴전협정이 조인될 시점 비무장지대 내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계속 거주가 허용되어, 대성동 주민들은 이곳에 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휴전협정 체결 이후 귀향은 허용되지 않았기에 이때까지 귀향하지 못한 사람들은 대성동에 돌아올 수가 없었다.

    이후 대성동 마을은 정부지원으로 점차 개발되었고, 마을의 민사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민정반이 상주하게 되면서 교통편 등 여러 가지 불편이 해소되었다.

    ● 대성동 주요시설

    국내 최고의 국기 게양대

    ▶ 국내 최고의 국기게양대

    국내 최고 높이의 국기 게양대로 365일 마을 한가운데에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80년 대성동마을에 이 국기게양대가 설치되자 곧이어 북한에서도 기정동 마을에 인공기 게양대를 설치하였다.

    - 설치일자 : 1980.12.18
    - 규 모 : 높이 99.80m
    - 국기규격 : 가로 12m 세로 19m(228㎡ : 69평)

    유엔군사령부 소속 민정반사무실

    ▶ 유엔군사령부 소속 민정반사무실

    마을주민들의 안전 및 구호를 위해 마을에 상주하고 있는 유엔군사령부 소속 민정반 사무실이다. 이 사무실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365일 상주하고 있으며 외부인이 마을에 출입하거나 주민 영농 작업시에 에스코트 하는 등 마을주민 안전을 위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대성동마을 회관

    ▶ 대성동마을 회관

    대성동 마을회관 건물로 1983년 10월에 건립하였고, 마을식당과 구판장, 노인정, 회의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회관건립 : 1동 연건평 150평(지하 1층, 지상2층)
    - 구 조 : 철근콘크리트, 스라브
    - 수용시설 : 노인정, 회의실, 여성회관, 식당, 관망대

    팔각정

    ▶ 팔각정

    대성동 마을과 마주하고 있는 북한 기정동 마을과 주변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망원경 없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전경을 볼 수 있는 장소로, 마을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꼭 들러가는 곳이다.

    ● 마을주변지도

    마을주변지도

    ● 동파리 마을이장 인사말

    저희 마을은 옛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성을 이웃하고 있고 우리나라 근세사의 격동기를 상징하는 판문점을 지근 거리에 두고 있으며 지정학적으로는 마식령에서 발원하여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접하여 있고 생태계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초평도를 껴안고 있는 물맑고 공기 청정한 산수 좋은 곳이오나 불행히도 남북을 갈라놓는 D.M.Z와 인접한 관계로 민간인 출입 통제구역에 위치한 옛 장단군 진동면 동파리라고 일컫는 곳이랍니다.

    최근들어 남북관계 긴장 완화와 접경지역 지원법이 50년만에 국회를 통과한데 연유하여 이 민통선지역도 6.25전쟁 전 원적을 가진 연고 권자들이 속속 입주하여 새 삶터를 마련하고 살게 된 것을 만시지탄이나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자고로 우리마을은 천혜의 조건으로 북에는 송악산, 동에는 감악산, 남으로는 심악산을 울타리로 하여 그 안으로 임진강과 한강이 서해바다와 합쳐지는 삼도의 정기서린 기화염풍이 황해바람 따라 이곳으로 스며들면서 그 곳에 일월성신 힘입어 만조때는 서늘한 강바람 간조때는 갯벌바람 가득히 고인 이곳에 지난 수억년간 현무암의 풍화작용으로 생성된 비옥한 토양에서 천하의 명약 인삼근은 물론 신비의 결실 대두는 가히 신의 작품이라 명명함이 합당하여 이를 이름하여 개성인삼(장단인삼)과 장단대두(장단콩)라 일컫는 것이지요.

    이러한 천혜의 고장이 지난 50년 세월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묶여 있었던 관계로 공해와는 절대 절연상태의 청정지역으로 보존된 까닭에 지금 이 순간도 인삼과 콩은 물론이고 청정백미, 온갖약초, 마근, 칙근, 두릅근, 머루다래, 오이, 호박 등이 청조하게 관리되어 있는 곳이랍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마을의 자랑과 긍지는 무병장수 마을로 정평이 나 있고 지금도 90세 원로님들이 주민 수 대비 10%를 점유하여 노익장을 과시하고 계십니다. 앞으로 주5일 근무제 시대가 도래하면 서울 등 대도시 사람들은 공해를 피해 자연과 벗하고 자연을 먹고 마시며 소득도 증대시키는 '주말농장' 영위는 오고 가는길 한시간이면 충분한 지역인 우리 동파리가 제격이라고 감히 천거 드릴 수 있는 곳이지요.

    특히 이곳 동파리는 고려 475년 이조 519년 도읍지 개성과 서울 중간에 위치하여 그때 그시절 유적들이 도처에 보전되어 동파리 인근의 의성 허준선생의 묘역, 신라 경순왕릉, 이율곡의 화석정, 황희정승의 반구정, 병자호란의 덕진산성, 판문점과 JSA, 남북긴장의 제1, 제3땅굴, 김신조 침투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156호 마애사면석불, 고려시대 사방석불, 고려12지신과 벽화, 눈물겨운 고려장터, 임진왜란 때 왜적을 피해 평양으로 몽진가신 국도 1호선, 앞으로 개방될 개성 선죽교, 박연폭포, 개성명기 황진이 묘역 등의 유적과 사적이 있어 고적 탐방은 물론 아이들의 현장학습 산교육장으로 더없이 적격인 곳이기도 하지요.

    앞으로 여러 강호제혈께서 이곳 우리마을 청정산수와 특산물도 맛보시고 뜻깊은 유적도 탐방하시고 주말농장도 영위하시여 귀로에는신비의 강 임진 기슭따라 고풍내음 물신한 먹거리집에 들러 임진강이 잉태한 황복요리, 메기매운탕, 장어구이, 참게장으로 허기를 메우면 그날의 피로는 언제 있었더냐 하듯 가시겠지요.

    우리 홈페이지를 찾아주신 여러 선생님! 이런 우리 마을은 한반도 안에서는 유일 무일한 곳이오니 뜻이 있으시고 흥미가 있으신 분께서는 항상 TEL.031-954-6430, 휴대폰.010-5211-7111으로 연락 주시면 정성껏 안내해 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끝으로 귀하의 건승과 행운이 앞날에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장 김경숙

    ● 동파리 마을소개

    • - 위 치 : 파주시 조내면 백연리
    • - 행정구역 :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정책입주촌」(군사분계선 남방 4.5㎞지점)

    동파리는 남북관계 긴장 완화와 접경지역 지원법이 50년만에 국회를 통과한데 연유하여 이지역(민통선)에 6.25전쟁 전 원적을 가진 연고권자들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2001년 부터 현재까지 입주가 진행중인 신흥 수복마을이다. 이 마을 주민들은 고향 땅에서 살기위하여 이곳에 새 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하면서 새 삶터를 마련하고 있다.

    동파리

    ● 가구별 입주

    - 2001.4월 : 주택 신축
    - 2001.7월 : 입주 시작
    - 2001.8월 : 버스 운행(1일 2회) - 문산공용 터미널에서 군내면 통일촌 운행 93번 버스를 1일 5회 연장운행
    - 현재 21가구에 76명의 주민이 입주하였으며 2002.10월 60가구 입주완료 예정

    ● 마을 공공건물

    - 복지회관 : 지하-창고, 1층-노인정, 구판장, 2층-마을회관, 어린이 공부방
    - 농산물직판장 : 별동-창고, 1층 -식당, 직판장 2층-통신실

    • 동파리마을회관

      <동파리 마을회관>

    • 동파리인삼밭

      <동파리 인삼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