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마을 파주 통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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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안내 마을체험 마을장터 마을여행 마을공간
    • 도라산전망대는 민통선 안에 위치한 전망대로 북한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남측의 최북단 위치한 전망대이다.
    • 도라산전망대
    • 도라전망대에서는 개성의 송학산, 김일성 동상, 북한 선전마을 기정동, 개성시 변두리, 장단역 부서진 기관차, 금암골(협동농장) 등을 망원경을 통해 바라볼 수 있다.
      연건평243평으로 관람석 500석,VIP실, 상황실,주차장(30~40대)등의 부대시설이 있으며 일반에게는 1987년 1월부터 공개되었다. 이곳은 제3땅굴과 마찬가지로 재향군인회 안보관광사업부 또는 임진각영업소를 통해 관광을 신청할 수 있다.
    • ● 관광문의 - 임진각관광안내소(031-953-4744)
      - 재향군인회 제3땅굴사업소(031-954-0303)
    •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국경일(일요일은 관광가능)
    • ● 출입절차 - 단 체 : 사전 문의 요망 (1일 1,200명으로 입장객을 제한하고 있음)
      - 개 인 : 임진각관광지 주차장 하차 셔틀버스 이용
    • ● 교통안내 -> 대중교통 :
      철도·버스이용 : 경의선 문산역 ~ 문산터미널(94번스) ~ 임진각도착
      버스이용 : 909(불광동), 922(광화문), 문산터미널(94버스) ~ 임진각도착

      -> 관광버스 :
      서울 ~ 통일로 ~ 벽제 ~ 문산 ~ 임진각 ~ 통일촌 ~ 제3땅굴
      김포공항 ~ 행주대교 ~ 자유로 ~ 임진각 ~ 통일촌 ~ 제3땅굴

      -> 승용차 :
      진입불가 (통제)
    • 파주 통일마을 주변의 통일 안보관광지는 서울에서 가깝고, 관광지를 순회하는데 시간이 오래 소요되지 않으므로 일일 관광코스로 즐기기에 적당한 곳이다.
    • 일일관광코스
    • 일부 관광지에 민통선 지역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미리 마을단체, 기관이나 관련 여행사를 통해 출입신청을 해야 한다. 그리고 민통선지역 출입시에는 신분증이 필요하므로 여행시 신분증을 꼭 지참하여야 한다.
    ● 일반코스
    일일관광코스정보
    A 코스 관광코스 문산역 → 임진각→ 민통선지역(제3땅굴, 도라산전망대, 통일촌 마을) → 파주시문화유적지 (반구정, 자운서원) → 문산역
    소요시간 3시간 30분
    B 코스 관광코스 임진각→ 제3땅굴→ 도라전망대 → 통일촌 마을→ 임진각
    소요시간 1시간 50분
    출발시간 1일 1회 13:00출발
    요 금 물가변동에 따른 요금 조정(수시변동)
    ● 임시운행 코스
    임시운행 코스
    A 코스 관광코스 문산역 → 임진각→ 민통선지역(제3땅굴, 도라산전망대, 통일촌 마을) → 파주시문화유적지 (반구정, 자운서원) → 문산역
    소요시간 3시간 30분
    B 코스 관광코스 임진각→ 제3땅굴→ 도라전망대 → 통일촌 마을→ 임진각
    소요시간 1시간 50분
    출발시간 1일 1회 13:00출발
    요 금 물가변동에 따른 요금 조정(수시변동)
    • 임진각은 구파발을 지나 시원하고 아름답게 뻗은 통일로의 최북단에 위치해 있는 임진각 관광지는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민족대립으로 인한 슬픔이 아로새겨져 있는 곳이다.
    • 임진각 관광지
    • ● 위 치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 ● 문의처 - 임진각관광안내소 031-953-4744
    • ● 출입절차 - 상시 출입가능
    • 연면적 742평에 지하 1층과 지상 3층 건물의 임진각은 1972년 12월 건립되었다. 이곳 임진각에서는 새해 첫날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실향민과 관광객들이 모여 망배단에 간소하게 제롓상을 차리고, 여러 단체들의 통일기원 행사가 개최되는 곳이다. 6천평의 대지 위에는 한국전쟁의 참상을 기리는 기념비들과 전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옥외전시장에는 임진장 지구 전적비, 미군 참전기념비, 한국전쟁때 사용되었던 비행기, 전차, 대포 등이 전시되어 있고, 전시관 내부에는 북한의 군사, 정치, 사회 등 생활상 전반에 관한 각종 자료 및 화보 4백여점이 전시관 내부에 진열되어 있다. 이밖에 판문점 모형 전시관, 미얀마 아웅산국립묘지 순국외교사절 위령탑, 실향민을 위한 망향과 추모의 제단인 망배단 등이 있다.

      또한, 남북 분단 전 한반도 북쪽 끝 신의주까지 달리던 기차가 이곳에 멈추어 전시되고 있다. 이곳의 임진철교는 원래 2개의 다리가 나란히 있었으나 전쟁시 하나는 파괴되어 철교의 교각만 남아 전쟁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 ● 자유의 다리
    • 자유의 다리
    • 자유의 다리는 1953년 한국전쟁 포로교환 당시에 북한에 억류되어 있던 전쟁포로 12,773명이 이 다리를 통해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귀환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자유의 다리 옆에 지금은 교각만 남아 있는 경의선 철교는 이미 폭격으로 파괴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쟁포로들이 차량으로 경의선 철교까지 도착하여 임시로 가설된 이 자유의 다리를 걸어서 건너 왔다고 한다.

      최근에 남북의 정치상황이 호전되면서 새로운 교량이 건설되었고, 끊어진 경의선 철도도 곧 복구되어 이제는 이 자유의 다리도 한국전쟁의 중요한 유산으로 우리들의 기억속에 남을 것이다.
    • ● 평화의 종
    • 자유의 다리
    • 임진각 높은 곳에 북녘땅을 굽어보며 새 천년의 우렁찬 종소리를 토해내고 있는 평화의 종은 인류평화와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9백만 경기도민의 의지를 모아 건립되었다. 21세기를 상징하는 무게 21톤, 높이 3.4m, 지름 2.2m 규모로서 2000년 1월 1일 0시에 21번 타종되었다. 종각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사모지붕의 목조 구조로서 면적은 21평, 높이는 12.2m 이다.
    • ● 망배단
    • 망배단
    • 임진각의 망배단은 휴전선 북쪽에 고향을 가진 실향민들이 매년 설날과 추석때나 가족이 보고싶을 때에 고향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이곳에서 이북에 계신 부모, 조부모에게 배례하는 장소이다. 소식이 끊겨 생사도 불명확한 가족을 애타게 찾는 이산가족의 아픔이 서려있는 곳이다.
    • ● 교통안내 -> 대중교통 :
      철도 및 버스 : 경의선 문산역 하차 ~ 문산역 ~ 94버스 ~ 임진각
      버 스 : 909(불광동), 922(광화문) 문산터미널 하차 ~ 94버스 ~ 임진각

      -> 자가용 :
      서울(남대문) ~ 벽제 ~ 문산 ~ 임진각관광지(1번국도 종착점) - 80분소요
      김포공항 ~ 행주대교 ~ 자유로 ~ 문산 ~ 임진각관광지 - 40분소요
    • 제3땅굴은 1974년 경기북부 연천지역의 제1땅굴, 1975년 강원도 철원지역의 제2땅굴이 발견된 이래 3번째로 발견된 땅굴이다. 문산까지의 거리가 12km, 서울까지의 거리는 52km밖에 안되는 지점에 위치해있다.
    • 임진각 관광지
    • ● 관광문의 - 임진각관광안내소(031-953-4744)
      - 재향군인회 제3땅굴사업소(031-954-0303)
    • ● 관람시간 - 단체(9시-17시), 개인(9시-15시)
    •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국경일 (일요일은 관광가능)
    • 제3땅굴은 1974년 경기북부 연천지역의 제1땅굴, 1975년 강원도 철원지역의 제2땅굴이 발견된 이래 3번째로 발견된 땅굴이다. 문산까지의 거리가 12km, 서울까지의 거리는 52km 밖에 안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땅굴의 길이는 1,635m, 폭 2m, 높이 2m이며, 이는 북한의 완전 무장한 병력 1만명이 1시간 이내에 이동할 수 있는 규모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땅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북한은 이땅굴이 적발되자 남한에서 북침용으로 뚫은 것이라고 억지를 쓰기도 하였는데 땅굴 내부 갱도를 살펴보면 굴을 뚫을 때의 폭파흔적이 남쪽을 향하고 있어 북한의 주장이 허구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은 민간인 통제구역이지만, 재향군인회 안보관광사업부 또는 재향군인회 임진각영업소에 개인 및 단체 관광신청을 통하여 관람할 수 있다. 외국인의 경우는 단체관광을 통해서만 관람 가능하다. 단, 땅굴 1일 견학자 수는 1200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 ● 출입절차 -> 개인이용시 :
      임진각관광지 주차장 하차 셔틀버스 이용
      10시부터 15시까지 매시정각(단, 토·일요일 30분 간격 배차)
      코 스 : 통일촌 ~ 제3땅굴 ~ 도라전망대 코스로 1시간 30분 소요
      관람시간 : 9시 - 15시

      -> 단체이용시 :
      재향군인회 제3땅굴사업소 접수
      코 스 : 통일촌 ~ 제3땅굴 ~ 도라전망대 코스로 1시간 30분 소요
      관람시간 : 9시 - 17시

    • ● 교통안내 -> 대중교통 :
      철도·버스이용 : 경의선 문산역 ~ 문산터미널(94번스) ~ 임진각도착
      버스이용 : 909(불광동), 922(광화문), 문산터미널(94버스) ~ 임진각도착

      -> 관광버스 :
      서울 ~ 통일로 ~ 벽제 ~ 문산 ~ 임진각 ~ 통일촌 ~ 제3땅굴
      김포공항 ~ 행주대교 ~ 자유로 ~ 임진각 ~ 통일촌 ~ 제3땅굴

      -> 자동차 :
      - 진입불가 (통제)
    • 이곳은 이산의 아픔을 갖고 있는 실향민들이 명절때마다 찾아와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추모제를 지내기도 하고, 평일에는 남녀노소, 가족과 연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통일동산에는 매년 100만명의 내외국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 통일동산
    •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길목에 위치한 통일동산은 민족분단의 실상을 이해하고 통일의지를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는 체험적 전시공간을 마련하고자 1985년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1993년 개발을 완료하였다. 통일동산은 북한의 자연환경과 주민 생활상을 볼 수 있는 통일전망대와 안보교육시설, 위락시설, 기타 편의시설 등을 갖추어 통일안보관광의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특히, 통일전망대 해발 140m 원형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비무장지대의 모습은 철새의 보고이며 생태관광의 천국이다. 또한 길게 뻗은 개뻘에는 수 많은 갈대밭이 숲을 이루고 있어, 이처럼 자연경관이 배어난 곳은 전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멀리 개성의 송악산이 보이며, 산기슭에는 북한의 선전용 건물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고, 농사짓는 북한주민의 모습도 보인다.
      통일전망대는 지상 5층, 지하1층의 석조건물로 지어졌으며 1992년 9월 8일 개관되었다. 이곳은 이북지역과 직선거리460m로 휴전선155마일중 비무장지대 폭이 가장 짧은 곳이다.(일반적인 비무장지대는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 각2km씩 4km로 설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다) 해발 140m의 높이에 자리잡은 원형전망실에서는 북한 주민의 농사짓는 모습등을 바라볼 수 있으며, 이북주민의 생활상을 알 수 있도록 현재 이북주민들이 사용하는 의류, 교과서, 생필품 등의 전시되어 있어 민족분단의 실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통일의지를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통일교육의 산도장 역할을 하고 있다.
    • ● 문의처 - 통일동산 관리사무소 031-945-3171, 031-945-2390
    • ● 입장료 - 어른 1,500원(단체 1,200원) - 어린이 900원(단체 700원)
    • ● 주차료 - 경차 1,000원, 소형 2,000원, 중형 3,000원, 대형 4,000원
    • ● 교통안내 -> 철도 및 버스 :
      경의선 금촌역하차~금촌탄현버스터미널~성동리행2번버스~통일동산 주차장

      -> 버스 :
      909(불광동),912(서울역),158-22(서울역)금촌역앞 하차~금촌탄현버스터미널~성동리행 2번 버스,567(신촌역,일산경유),77-33(신촌전철역,일산경유), 금촌탄현버스터미널하차~성동리행 2번~통일동

      -> 자가용 :
      - 김포국제공항~행주대교~자유로~통일전망대 주차장(30분)
    • 통일로 대로변에는 한국전쟁을 기리는 많은 전적비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위용이 있는 기념비들은 통일공원에 모여 있다.
    • 통일공원
    • ● 위 치 -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봉서리
    • ● 문의처 - 통일공원 내 휴게소 031-953-0847
    • 통일로 대로변에는 한국전쟁을 기리는 많은 전적비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위용이 있는 기념비들은 통일공원에 모여 있다. 통일공원은 육군 제1사단 장병들이 전쟁중에 불굴의 의지와 투혼을 발휘하여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낸 그들의 업적과 호국정신을 길이 후세에 전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공원내에는 한 손에 수류탄을 들고 적의 탱크에 과감하게 돌진하여 자신의 몸을 탱크와 함께 던진 육탄 용사들의 사실적이고 생동감있는 장면이 조각상으로 표현 된 육탄 십용사 충용탑을 비롯하여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념비, 김만술 소위 기념비, 이유중 대령 기념비,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위령탑 등이 있다.
    • ● 이유중대령 기념비 1981년 12월 13일, 고 이대령의 애국충정심과 투철한 군인정신을 기리고 반공 애국정신과 필승의 신념을 받들기 위해 건립되었다. 비문에 "여기 호국의 선봉으로 젊음을 다바친 이유중 대령의 전진혼을 기린다."라고 적혀 있다. 모형은 기단높이 1.8m, 비높이 1.7m로 재료는 화강석이다.
    • 통일공원
    • ●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위령탑 1987년 6월 25일 건립되었으면, 비문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두의 영봉 우러러보이는 개마고원 줄기 줄기마나, 정의의 횃불 훨훨 타오르고, 공산학정에 저항하는, 젊음의 의기 하늘로 치솟다. ... 영웅들이시여! 그대들 공훈 찬란히 빛나리니 언제까지 언제까지나, 자유의 진실 만방에 떨치리라." 위령탑은 기단 0.5m, 탑높이 12mdml 화강석으로 옆으로 3개가 나온 것은 3자를 의미하고 탑은 8개가 둘러져 있어 38선 및 단결을 의미한다.
    • ● 임광빈중령 기념비 임진각의 망배단은 휴전선 북쪽에 고향을 가진 실향민들이 매년 설날과 추석때나 가족이 보고싶을 때에 고향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이곳에서 이북에 계신 부모, 조부모에게 배례하는 장소이다. 소식이 끊겨 생사도 불명확한 가족을 애타게 찾는 이산가족의 아픔이 서려있는 곳이다.
    • 판문점은 남북분단의 아픔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대립의 현장인 동시에 통일을 향한 화해와 대화의 창구이기도 하다.
    • 판문점
    • 판문점은 남북분단의 아픔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대립의 현장인 동시에 통일을 향한 화해와 대화의 창구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른 남북분계선 위에 위치한 '공동경비구역'인 이곳 판문점은 오늘도 민족분단의 아픈 현실을 몸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남북을 가로막은 휴전선 155마일의 장벽 중 유일하게 남북을 연결해 주는 '열린땅'으로서 7천만 민족의 기대가 쏠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판문점은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위 37도 57분 20초, 동경 126도 40분 40초 지점 부근이며, 긴 지름 1km, 짧은 지름 800m인 타원형구역 한복판에 휴전선이 있다.
    • ● 관람 방법 - 외국인 : 10세 이상으로 여권을 소지하여야 관람이 가능
      - 내국인 : 신청 접수후 약 3~개월 후에 관람 가능, 만10세 이상, 단체(30~43명)에 한해서 신원조회 후 결격사유가 없으면 관람 허용, 직계가족 동반 불가
    • ● 관람 안내 - 외국인 : 대한여행사(02-777-6647), 중앙고속관광(02-2266-3350)
      - 내국인 : 거주지 시도 국가정보원 상담소 080-999-1113(전국공통), 서울지역 2-273-1114~7
    • ● 휴전회담 판문점은 1951년 10월 25일, 개성에서 열리던 휴전회담 장소가 이곳으로 옮겨오기 전까지는 낯선 이름에 불과했다. 개성에서 한국전쟁 휴전회담이 진행중이던 1951년 8월 22일 소위 '개성폭격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공산군측은 개성중립지대에 대한 폭격을 비난하면서 휴전협상의 중단을 통고해 왔다. 휴전회담이 중단되자 국군과 유엔군은 8월말 하계공세를 펼쳤고, 이로 인해 막대한 군사적 타격을 입은 공산군측은 드디어 몇 차례의 교섭과 연락장교 회담을 거친 후 회담 재개 및 유엔군측의 회담장소의 변경에 동의하였다.
      • 1953년 포로교환 모습

        <1953년 포로교환 모습>

      • 돌아오지 않는 다리

        <1953년 포로교환 모습>

    • 이리하여 새로운 회담장소로 판문점이 결정되었으며, 이 후 이곳은 영구적 회담장소가 되었다. 판문점은 본래 마을사람들이 '널문리'라고 불렀던 조그마한 주막거리였다. 널문리는 널빤지로 만든 문짝마을이란 뜻으로 그것을 한자로 표기하면 板門店이었다. 판문점은 회담장소로 결정되면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한국 분단의 역사를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1953년 7월 27일 긴 휴전회담 끝에 마침내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되었고, 양측은 "최종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의 무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협정문서에 서명했다. 12시간 후에는 전투가 완전히 종식되었고, 이 시각부터 쌍방의 군대는 각각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2km씩 비무장지대 밖으로 철수해야만 했다.

      그리고 1953년 8월 5일부터 9월 6일까지 판문점에서 포로교환이 이루어졌다. 유엔군측은 북한포로 7만 183명, 중공군 5,640명 등 모두 7만 5,823명을, 공산군측은 국군 7,862명, 유엔군 4,911명 등 모두 1만 2,773명을 각각 송환했다. 휴전협정 조인과 함께 판문점은 군사정전위원회의 회담장소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 ● 군사정전위원회 군사정전위원회는 휴전협정이 조인됨에 따라 협정의 이행을 감시하고 위반사건을 협의, 처리하기 위하여 설치된 공동기구이다. 휴전협정이 발효된 이래 총 459차 본회의를 개최하였는데, 1991년 3월 한국군 황원탁 소장이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로 임명되자, 북한은 남한이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이해 5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460차 회의에 불참한 이후, 회의는 중단되고 있다.
      • 판문점 군사회담장 내부

        <판문점 군사회담장 내부>

      • 군사회담장 옆의 군사분계선

        <군사회담장 옆의 군사분계선>

    • 군사정전위원회는 10명의 대표로 이루어진 공동의 국제기구로, 유엔군측 대표단은 1991년 3월 이전에는 미군장성 1명을 수석대표로 하여 국군장교 2명, 영국군장교 1명, 기타 유엔참전국의 장교 1명으로 구성되었고, 공산군측 대표단은 수석대표인 1명의 장성을 포함하여 북한군장교 4명과 중공군장교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군사정전위원회의 유엔군측 대표단과 공산군측 대표단은 그 본부를 각각 서울과 개성에 두고 있으므로, 양측은 24시간 계속적인 상호연락을 유지하기 위하여 판문점에 공동일직장교를 두고 있다. 정전업무에 관련된 쌍방간의 모든 문서와 통신은 판문점 내에 각각 사무실을 두고 있는 쌍방의 이들 일직장교에 의하여 연중무휴 24시간 운용되고 있다.
    • ● 중립국감독위원회 판문점에는 중립국감독위원회의 본부가 설치되어 있으며, 스웨덴, 스위스(유엔군측 지명)와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공산군측 지명) 등 4개국의 감시위원이 상주하였다.
      그런데, 1994년 4월 29일 북한은 일방적으로 군사정전원회로부터 철수한다고 선언하였고, 5월 24일 군사정전위원회를 대체하는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설치를 통보하였다. 또한 1993년 4월 체코대표단을 판문점에서 철수토록 하였으며, 1994년 4월 폴란드대표단에게도 철수를 통보하여, 현재 중립국감독위원회에는 유엔군측의 스웨덴과 스위스 감시위원만이 상주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엔군측은 "북한쪽 대표의 철수에 이은 중국쪽 대표의 철수에도 불구하고 정전협정 체제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 판문각

      <북한 관광객과 판문각>

    • 공동경비구역은 휴전협정 체결에 이은 1954년 11월 8일자 협약에 따라 설치되었다. 당시 협약의 주요 내용은 남북 4km의 비무장지대 내에 군사정전위원회 본부지역을 설정하여 그 안에 지름 800m의 공동경비구역을 둔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판문점은 유엔군과 공산군, 즉 적대 쌍방군대가 '共存公有'하는, 지구상에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공동경비구역이 되었다.
    • 공동경비구역 안에서는 군사분계선을 표시하지 않았으나, 1976년 8월 18일 북한 경비병에 의한 '도끼만행사건'을 계기로 표시하게 되었고 이 표시를 경계로 공동관리업무 가운데 경비업무만은 분할경비를 하게 되었다. 이러한 표시에 관계없이 양쪽의 군사정전위원회에 속하는 인원들과 보도진들은 공동경비구역 안의 모든 곳을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도록 하가되었으나, 대개의 경우 상대방의 건물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판문점에는 남북경계선 위에 들어선 7채의 퀀셋 건물, 남쪽의 '자유의 집'과 '평화의 집', 북쪽의 '판문각'과 '통일각', 그리고 몇 개의 경비초소와 남북한의 연락사무소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남북으로 통하는 직통전화가 설치되어 쌍방군대 최고사령관이 통화할 수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남북대화를 위한 24회선의 직통전화선이 연결되어 있다.